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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백영중 단우님과 조찬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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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점동 작성일06-10-31 11:19 조회4,245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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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아침에는 미국에서 기업을 일으켜 성공한 백영중 단우와 조찬을 함께 했습니다. 세계한상대회를 주관하기 위해서 부산에 오신 백영중 단우(흥사단미주위원부 위원장, 세계한상대회 공동의장)님과 부산흥사단 단우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흥사단 구치모 이사회장, 부산흥사단 배영호 회장을 비롯하여 전에 회장을 지낸 김종근, 임성규, 우주호, 진영택 군이 복국으로 성공한 해운대 금수복국집에서 아침 식사를 하면서 백영중 회장의 성공담을 들었습니다. "나는 정직과 성실로 미국을 정복했다"라는 자서전을 내기도 하였는데, 흥사단의 지원으로 미국으로 건너가서 세계적인 기업인으로 성공한 바탕에는 흥사단 정신과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가르침이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래에 관련 기사를 옮겨 놓으니 참고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2006. 10. 31.

조점동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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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올해의 기업인상 수상한 백영중 패코스틸 회장


 "기업인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정직과 성실입니다. 철골 골조 한 가지만은 세계에서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생각을 어느 순간에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패코스틸(Paco Steel & Engineering)의 백영중 회장(77)은 자신의 경영철학을 이같이 말했다. 백 회장은 아메리칸 드림을 일군 대표적인 동포기업인. 세계한상대회 리딩CEO포럼 의장으로 활동했고 매일경제TV에서 한상기업인으로 집중조명할 정도로국내에 잘 알려져 있다.

"노 머니, 노 잉글리시."

 그의 표현대로 가진 것도 없고 영어도 잘 못하던 백영중 회장은 패코스틸의 성공적인 경영으로 미국 최고의 신뢰받는 기업인으로 손꼽힌다.
 지난달 9일 미국 조립주택협회는 백 회장에게 '올해의 기업인상'을 수여했을 정도다.
 로스앤젤레스 남부 롱비치 인근 공장지대에 위치한 패코스틸 본사. 두세 평 남짓한 회장실에는 아칸소주 소재 패코스틸 철골제조공장 사진이 전면에 걸려 있다.

 맞은편에는 동포기업으로선 처음으로 언스트앤영과 CNN, 나스닥 등이 공동선정했던 99년 '올해의 기업인' 상이 빛을 발하고 있다. 하지만 오래된 벤츠 승용차를 직접 운전하면서 출퇴근하는 백 회장. 그는 "기업과 기업인이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신용"이라고 말한다.

 백 회장이 패코스틸을 창업한 것은 지난 1974년. 이후 32년 동안 조립주택에 쓰이는 철골 골조를 생산해 왔다. 창업 당시 노골적으로 "당신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무시하는 미국 구매자들을 상대로 제품납기일을 한 번도 어기지 않은 신용을 쌓은 덕에 주택용 경량 철골분야에서 미국 내 시장점유율 60%를 넘어설 만큼 회사를 키웠다. 패코스틸은 연간 매출액이 1억5000만 달러에 달한다.

 백 회장은 패코스틸의 신제품인 '목재 철골'을 자랑스럽게 소개한다. 이 제품은 못질이 가능하도록 철강골조에 목재를 갖다 붙인 것. 조립주택이 목조로 지어지는 점에 착안해 철강에 목재를 붙여 골조를 만들었다. 철강골조이기 때문에 주택 구조를 강력히 지탱해주면서도, 힘들이지 않고 주택을 완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아직도 할 일이 많습니다."

패코스틸 경영의 많은 부분을 아들에게 넘겨주었고 팔순을 앞둔 나이지만 골조 제품을 직접 챙기는 백 회장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좋은 철강제품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가득 차 있다.

[로스앤젤레스 = 김경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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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해외동포상 특별상 받는 백영중 패코스틸 회장
무일푼에 영어도 모르는 상태에서 미국내 철강업계를 평정한 입지전적인 한국인
    이영일(ngo201) 기자   
 
 
지난 74년 창업해 미국 전체 경량철골 시공물량의 6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미국 철강왕 백영중 패코 스틸 (Paco Steel & Engineering) 회장(73)이 오는 5일 열리는 제11회 KBS 해외동포상 수상식에 특별상 수상을 위해 입국한다.

 
 
▲ 단돈 50달러를 갖고 미국 철강업계를 평정한 입지전적인 한국인 백영중 패코스틸 회장. 
 
ⓒ 이영일
백영중 회장은 "No Money·No English" (무일푼에 영어를 모르는)인 상황에서 무일푼으로 자수성가를 이룬 입지전적인 인물로, 아이빔을 생산·판매하는 미국내 굴지 철강업체인 패코 스틸을 창업하고 현재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인디애나 공대에서 토목공학(Civil Engineering)을 전공한 엔지니어 출신으로, 1962년도에 슐레 스틸(SOULE STEEL)이라는 철강회사에서 팩스 니(Paik's Knee)라는 볼트 공법을 처음 개발하면서 두각을 보이기 시작했다. 마크 크레스트(MARK CREST)철강으로 자리를 옮긴 백영중 회장은 본격적으로 영업에도 뛰어들었고 1974년에는 백영중 (Paik)의 앞 두 글자와 회사 (Company)의 앞 두 글자를 딴 패코(PACO)스칠을 창업하기에 이른다.

 
 
▲ CNN, USA TODAY지 등이 후원하는 '올해의 기업인'에 선정되어 답례하는 백영중 회장. 
 
ⓒ 이영일
이후 수많은 창의적 기술과 공법을 개발하던 백영중 회장은 주름잡이빔 (Corrugated Beam, 주름잡은 함석판이 강도가 높아지는 원리에 착안한 것으로 같은 두께의 철판이라도 주름을 잡으면 강도가 두세 배 강해지고 무게가 25~30%s이상 줄어드는 이치를 활용한 빔)을 발명하면서 일약 패코 스틸을 세계적인 용접 빔 철강업체로 급부상하게 만들었고, 지난 99년도에는 Ernst&Young사가 주관하고 CNN, USA TODAY지 등이 후원하는 올해의 기업인상 (Entrepreneur of the Year)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백영중 회장은 1930년 평안남도 성천에서 태어났다. 6.25전쟁중 북한군에 의해 아버지가 총살당했고 청년 백영중은 고향에 어머니와 형제를 남겨놓고 단신으로 월남한 후 연희대 재학중에 흥사단 장학생 선발 시험에 합격하여 1956년 미국에 유학했다.

미국에 유학한 백영중은 당시 미국에 거주하던 도산 안창호 선생의 부인 이혜련 여사의 도움과 함께, 흥사단 위원장이었던 한시대 선생으로부터 한국에서 미국 올 여비를 마련하느라 정부에서 유학생에게 바꿔 주는 달러를 암시장에 팔아 여비를 마련한 것에 대해 호된 꾸지람을 듣고 이후 "정직과 신뢰"를 자신의 인생은 물론 비즈니스에 적용한 철저한 도산 안창호의 사장적 제자로 살아온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그동안 지금의 성공을 이룰 수 있게 도와준 흥사단에 기여한다는 일념으로 현재 흥사단 미주위원부 위원장으로도 활동하면서 일선 현장 운동판에서도 왕성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1999년 1월에는, 상해 임시정부가 3.1운동 이후 독립운동 재원 마련을 위해 1920년에 발행하고 당시 미주 흥사단 단원들이 사들였던 9천여원의 "독립공채"를 22만 2천달러로 상환받았고, 2002년 9월에는 애국선열 추모 및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관 복원사업을 위한 기금 10만달러를 이민 100주년 남가주기념사업회에 기탁하였다. 2003년 1월 25일에는 미국 뉴욕한인회관에서 흥사단 뉴욕지부 창립에 적극 참여하기도.

 
 
▲ 그의 자서전 "No Money·No English 나는 정직과 성실로 미국을 정복했다." 
 
ⓒ 이영일
그가 지난 1999년, 자신이 걸어 온 길을 정리하여 엮은 <나는 정직과 성실로 미국을 정복했다>는, 성공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기업인의 자세가 정직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신용인이어야 함과, 좌절을 직접 부딪히면서 의지와 신념으로 헤쳐나가야 하는 강인함의 필요성을 가르쳐 주고 있으며, 미국 이민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에 따른 용기와 책임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백영중 회장은 오는 3월 5일 생방송으로 실시되는 제11회 KBS 해외동포상 수상식에 참가한 후, 3월 14일 흥사단 전주지부 초청 강연회, 3월 18일 흥사단 부산지부 초청 강연회에 참석하는 등 전국의 흥사단 단우들과 시민들을 만나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한 특강을 실시한다. 백영중 회장 특강 문의는 ☎ 흥사단 본부 홍보부 02-743-2511로 하면 된다.

 
 ▶ 백영중 회장은? 
 
 
1930년 평안남도 성천에서 3남 2녀의 장남으로 출생.
1949년 평양 제1중학교 교원 생활.
1950년 11월 단신 월남.
1956년 연희대 재학 중 흥사단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도미.
1959년 오하이오주 밴워트 카운티 최초의 동양인 공무원으로 특채.
1961년 양경숙과 결혼, 슬하에 2남 1녀를 둠.
1974년 패코 엔지니어링 (PACO ENGINEERING) 창업.
1982년 로스앤젤레스의 Asian Business Man of The Year 선정.
1988년 島山高家 보존 발기인대회 회장, 해외광복기념관 건립위원장.
1990년 미국내 경량철골 유통 1위 기업.
1994년 아시안 커뮤니티 대표로 클린턴과 백악관 면담.
1995년 미국 경제대표단으로 북한 방문.
1999년 6월 로스앤젤레스 지역 올해의 기업인상 (Entrepreneur of the Year) 수상.

현 패코 스틸 회장,
현 흥사단 미주위원부 위원장.
 
 
 
 
댓글목록

차동박님의 댓글

차동박 작성일

  좋은 글이라 생각되어서 부산흥사단 게시판에 링크를 올려두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좋은 글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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