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현충일! 조기를 게양하려고 서재에서 태극기함을 내리는데, 그 옆에 있던 빛바랜 엣날 노트가 한 권 떨어졌습니다. 그 자리에서 몇 곳을 넘겨보니 48년 전 내 재산 목록 기록이 있습니다.

1975년 11월 2일의 재산 목록.

솥 1개, 냄비 2개, 밥그릇 3개, 국그릇 3개, 수저 3개..... 연탄 집게 1개, 도마 1개, 칼 1개, 바가지 1개..... 책 6권, 연탄 8장, 현금 11,000원.....

상세히 적혀있는 걸로 보아 전재산 목록이 맞습니다.

기억을 되돌려보니 임실에서 취직을 위해 부산에 와, 신발공장에 취직이 결정된 뒤 준비한 자취방 재산 목록입니다. 아내와 아들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곧 데려올 예정이라 그릇과 수저가 3개씩 이네요.

현금이 11,000원이지만 제법 많은 돈입니다. 국제화학 신발공장에 들어가서 받은 월급이 30,000원이었거든요. 장모님께서 주신 50,000원으로 달세 보증금을 냈습니다. 그 돈은 기록에 빠졌네요.

며칠 후에 아내와 아들이 와서 세 식구가 함께 살아 온 48년 세월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다음 해 봄에 딸이 태어나 네 식구 한 가정이 되었는데, 정말 참 고맙게도 상향곡선을 그은 삶이었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부끄러워 보일 재산 목록! 그렇게 시작해서 오늘처럼 가난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며 행복한 일인지요. 다 아내 덕분입니다. 사랑하는 배묘연 안토니아 씨! 고맙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