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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사랑하고 떠난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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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점동 작성일11-12-23 08:28 조회2,3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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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조선일보 2011년 12월 23일자 입니다.

엄마가 무덤까지 갖고간 비밀… 아들은 빈소에서 알고 울었다

 
남정미 기자

입력 : 2011.12.23 03:12 | 수정 : 2011.12.23 06:08

임정순씨 평소엔 기부·선행, 죽어선 장기까지 기증
가난만 탓했던 아들… 뒤늦게 후회의 눈물
"엄마, 기부금 2만원 화내서 죄송… 그 돈 제가 낼게요"
53년 천사로 산 엄마, 자신은 50만원 월급에도 공장 어렵자 1500만원 내놔
항상 다른사람 주려 뜨개질… 야간 훈련 군인에 누룽지도
그 선행 처음 들은 아들, 조문객의 엄마 기부 얘기에 "자랑스럽다, 저도 장기 기증"

"어머님은 날개 없는 천사셨어요. 이제야 날개가 생겨 하늘로 가신 거고요."

지난 17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어머니의 빈소를 지키던 아들 전영완(31)씨는 영정으로 남은 어머니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고 있었다. 어머니가 다니던 절인 봉영사 살림을 돌보는 장재순(50)씨가 전씨의 손을 잡으며 "어머님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분"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전씨는 "어머니의 비밀을 이제야 알게 됐어요. 어머니가 자랑스럽습니다. 보고 싶고요"라며 눈가를 훔쳤다.

전씨의 어머니 임정순(53)씨는 이날 오전 뇌출혈로 쓰러져 뇌사 판정을 받았다. 가족들이 평소 남을 도와온 임씨의 뜻을 헤아려 장기 기증을 결정했다. 임씨가 기증한 간과 신장 2개, 각막 2개는 5명에게 새 삶을 열어줬다.

어머니가 세상에 남긴 것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아들은 소식을 듣고 빈소로 달려온 사람들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어머니의 '비밀'을 듣게 됐다.

봉영사의 장씨는 "우리 절에 온 사람 중에 어머니의 은혜를 입지 않은 분이 없다"며 "이달 초에도 절 근처에서 야간 훈련을 하며 떨고 있던 군인들을 위해 오전 3시에 손수 누룽지를 끓여주고, 40인분의 설거지까지 직접 하고 가셨다"고 했다.
'동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라면서 직접 시장을 봐 절에 있던 개와 고양이의 밥을 만들어 먹인 것도 어머니였다고 했다. "임씨가 절 입구에 나타나면 동물들이 먼저 마중을 나갈 정도였다"고 했다. 아들은 지난 8일 어머니의 부탁으로 책 100여권을 들고 함께 절을 찾은 기억을 떠올렸다.

장씨는 "우리 절 쉼터에 있는 책 300여권은 모두 임씨가 기증한 것"이라며 "평소 익명으로 독거노인들에게 수시로 옷과 돈을 갖다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빈소를 찾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들에게 어머니의 선행에 대해 말하고, 그런 사람이 세상을 떠난 것을 슬퍼했다. 어머니가 다녔던 의류공장 사장 박종우(62)씨도 빈소에서 눈물을 쏟았다. 박 사장은 아들에게 "어머님이 이전에 다니던 공장이 97년 부도에 몰려 직원들이 월급을 받지 못하게 되자 어디서 1500만원을 구해 직원들 월급을 주셨다"며 "정작 자신은 50만원만 받고 일하셨는데, 결국 그 공장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사장은 도망쳐 버렸다"고 말했다. 가족도 모르는 이야기였다. 함께 공장에 다녔던 조희숙(32)씨는 "우리 공장에서 임씨는 모든 사람이 의지하고 따르는 '엄마' 같은 분이셨다"며 "가방엔 항상 길거리에 버려진 동물을 위한 빵이 들어 있었다"고 말했다.

icon_img_caption.jpg 22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 봉영사에서 전영완씨가 다섯 사람에게 새 생명을 주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 임정순씨의 영정을 들고 생각에 잠겨있다. 전씨는 어머니가 생전 남몰래 했던 선행을 뒤늦게 알고 “어머니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아들은 처음 듣는 어머니의 이야기에 목이 메었다. 아버지가 30년째 버스 운전을 하고, 어머니 역시 20년 동안 끊임없이 공장일을 하면서도 나아지지 않는 형편에 부모를 원망했던 마음이 부끄러웠다.

3년 전 어머니 통장에서 한 구호단체 앞으로 2만원이 찍혀 나가는 것을 발견하고는 "왜 돈도 없는데 이런 일을 하느냐"며 화를 냈던 기억이 아파서 울었다. 어머니는 그때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했다. 전씨는 앞으로 어머니가 내던 후원금을 자기가 대신 정기적으로 낼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생전에 이런 말씀을 해주셨더라면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청계천에서 털실 가게를 운영하는 최재란(57)씨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함께 타면 어르신들과 장애인들에게 늘 자리를 양보했고, 젊은 사람들을 일으켜서라도 자리를 만들어줬기 때문에 같이 다니기 불편할 정도였다"고 했다.

그는 "임씨는 항상 주변 사람들을 위해 뜨개질을 했다"고도 말했다. 임씨가 다니던 공장 사람들도 모두 임씨가 짠 장갑과 목도리를 선물받았다. 최씨는 "돌아가시던 날도 독거 노인들과 스님들을 위해 뜨개질을 하셨다"고 했다. 빈소를 찾은 사람은 모두 울음을 참느라 눈을 감았다.

지난 19일 임씨는 봉영사에 잠들었다. 아들은 "이 절 곳곳에 어머니의 손길이 묻어 있다고 하더라"고 했다. 아들은 "어머니가 하던 봉사, 이제 제가 하겠습니다. 저도 장기 기증 동의서를 제출할 생각입니다"라고 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깨우쳐주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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