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2일, 전주로 성지순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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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점동 작성일08-07-04 01:01 조회2,846회 댓글0건본문
7월 12일, 전주로 성지순례 갑니다.
우리 동네 천주교 공소 신자들이 전주로 성지순례를 가기로 했습니다. 전주 입구에 있는 치명자산 성지와 전동성당을 찾아볼 예정입니다. 한옥마을과 경기전을 관람하고 맛있는 전주 콩나물국밥으로 점심을 먹을 예정입니다.
돌아 오는 길에 남원 광한루를 거쳐 시간이 되면 하동으로 와서 재첩국밥을 먹고 남해안 고속도로를 달려서 밀양으로 돌아올 예정입니다. 남원에서 구례를 거쳐 하동의 섬진강 강변도로는 우리나라 최고의 아름다운 길이 아니겠습니까? 바로 그 길로 다녀 오려는 것입니다.
예정대로 다녀 오게 되면 성지순례와 전주 관광, 맛있는 콩나물국밥과 재첩국밥까지 먹게 되어 일석이조가 될 것입니다.
이번 장소는 내가 권장하고 주선했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성지순례를 통해서 신앙생활을 더 잘 할 수도 있고, 산골 노인들을 위해서 관광과 변화있는 삶을 즐기게 하려는 것입니다. 오늘 예림성당 주임신부님을 만난김에 성지순례를 간다고 말씀드렸더니 즉석에서 금일봉을 주셨지요.
전주에는 우리 교우 김경희 베드로 씨의 장녀가 전주 향토사단에서 중대장으로 근무 중이어서 어쩌면 만나볼 수도 있겠지요. 아무튼 우리 남산공소 신자들과 함께 전주로 성지순례 갑니다.
2008. 7. 4.
(1972년 7월 4일 "남북7.4 공동성명"을 발표한 그날입니다. 나는 이때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현리에서 육군 야전공병으로 근무했는데, 소형 라디오로 뉴스를 듣고 깜짝 놀랐지요. 더 놀라기는 그해 가을 10월 16일 저녁 7시에 폭탄선언인 이른바 유신 선포였지요. 국회를 해산하고 헌법을 정지했던가 어쨌던가.....
이날도 저녁 식사를 하고 혼자서 라디오를 듣다가 그 폭탄선언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그해 국민투푠지 유신헌법 투푠지 무슨 투표를 중대장이 다 했었지요. 처음에는 중대장 입회하에 투표를 하려고 했다가 아예 중대장이 다 꾹꾹찍어서 보내는 것을 내가 두 눈으로 다 보았지요. 그래놓고 국민 몇%가 찬성했다고 선전하고 그걸 근거로 박정희의 철권통치가 시작됐고, 1979년 10월 26일의 불행한 결과를 자초한거지요.
잊을 수도 없고 잊혀지지도 않은 한국 민주주의의 슬픈 역사의 한 단면입니다.
우리 동네 천주교 공소 신자들이 전주로 성지순례를 가기로 했습니다. 전주 입구에 있는 치명자산 성지와 전동성당을 찾아볼 예정입니다. 한옥마을과 경기전을 관람하고 맛있는 전주 콩나물국밥으로 점심을 먹을 예정입니다.
돌아 오는 길에 남원 광한루를 거쳐 시간이 되면 하동으로 와서 재첩국밥을 먹고 남해안 고속도로를 달려서 밀양으로 돌아올 예정입니다. 남원에서 구례를 거쳐 하동의 섬진강 강변도로는 우리나라 최고의 아름다운 길이 아니겠습니까? 바로 그 길로 다녀 오려는 것입니다.
예정대로 다녀 오게 되면 성지순례와 전주 관광, 맛있는 콩나물국밥과 재첩국밥까지 먹게 되어 일석이조가 될 것입니다.
이번 장소는 내가 권장하고 주선했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성지순례를 통해서 신앙생활을 더 잘 할 수도 있고, 산골 노인들을 위해서 관광과 변화있는 삶을 즐기게 하려는 것입니다. 오늘 예림성당 주임신부님을 만난김에 성지순례를 간다고 말씀드렸더니 즉석에서 금일봉을 주셨지요.
전주에는 우리 교우 김경희 베드로 씨의 장녀가 전주 향토사단에서 중대장으로 근무 중이어서 어쩌면 만나볼 수도 있겠지요. 아무튼 우리 남산공소 신자들과 함께 전주로 성지순례 갑니다.
2008. 7. 4.
(1972년 7월 4일 "남북7.4 공동성명"을 발표한 그날입니다. 나는 이때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현리에서 육군 야전공병으로 근무했는데, 소형 라디오로 뉴스를 듣고 깜짝 놀랐지요. 더 놀라기는 그해 가을 10월 16일 저녁 7시에 폭탄선언인 이른바 유신 선포였지요. 국회를 해산하고 헌법을 정지했던가 어쨌던가.....
이날도 저녁 식사를 하고 혼자서 라디오를 듣다가 그 폭탄선언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그해 국민투푠지 유신헌법 투푠지 무슨 투표를 중대장이 다 했었지요. 처음에는 중대장 입회하에 투표를 하려고 했다가 아예 중대장이 다 꾹꾹찍어서 보내는 것을 내가 두 눈으로 다 보았지요. 그래놓고 국민 몇%가 찬성했다고 선전하고 그걸 근거로 박정희의 철권통치가 시작됐고, 1979년 10월 26일의 불행한 결과를 자초한거지요.
잊을 수도 없고 잊혀지지도 않은 한국 민주주의의 슬픈 역사의 한 단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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