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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10일은 결혼 35주년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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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점동 작성일08-04-10 00:01 조회2,710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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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10일은 결혼 35주년 기념일

 내가 아내를 만나게 된 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고 필연이었던 것 같습니다.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자리에 있던 두 사람이 알게 되고 마음을 나누다가 부부의 인연을 맺고 35년을 함께 한 것입니다. 그것도 혼인 생활 35년 동안 편안한 부부로, 싸움한번 하지 않은 부부로, 큰 어려움 없이 인생 동반자 부부로 살아 왔습니다.

 내가 아내를 알게 된 것은 지금부터 41년 전인 1967년 3월입니다. 정확하게 3월 16일에 쓴 편지 한 통이 나에게 온 것입니다. 내 나이 스무 살을 며칠 앞 둔 날이기도 합니다. 산에서 나무를 한 짐 해서 지고 집으로 왔는데, 사립문에 편지 한 통이 걸려 있었습니다. 아내가 보내 온 편지였습니다.

 나는 그 전해 겨울에 농협에서 발행하는 월간 잡지 새농민에 투고한 일이 있는데, 1967년 2월호인지 3월호에 후반전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습니다. 내용은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농사를 짓는데, 꿈을 가지고 있다, 내 인생의 후반전을 이겨 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국민학교를 1등으로 졸업했는데,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지만 인생 후반전을 이겨보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글을 읽고 전국에서 적지 않은 편지들이 왔는데 그 중에 하나입니다.

 아내의 편지는 참 좋은 느낌이 왔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나와 비슷한 처지의 열아홉 살 농부 아가씨의 편지에 매료되었다고 할까요. 아무튼 첫 편지가 이상하게 흐뭇한 감정을 불러 왔습니다. 그 당시에 받은 편지는 누구든지 답장을 해 준다는 원칙에 따라 곧바로 답장을 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펜팔이 두 달, 다섯 달로 이어지더니 1년이 되고 2년이 되었습니다.

 2년 반이 되던 1969년 추석에, 사진만 주고받던 우리는 마산에서 직접 만났습니다. 나는 임실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장장 9시간을 달려서 마산에 도착한 게 오후 6시였습니다. 오후 3시경에 도착한다고 하여 3시에 만나기로 약속하였는데, 3시간이나 늦게 도착한 것입니다. 다행히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가 아내의 친구가 근무하는 병원이었기에 망정이지 공원이나 무슨 다방이었다면 못 만났을 수도 있었습니다. 마산에 도착하자마자 찾아간 병원에는 아내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만난 우리는 3박 4일간 날마다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진도 두 번이나 찍고 영화도 육군 김일병을 보았지요. 어느 날은 하루 종일 비가 와서 내가 묵고 있던 여인숙에서 하루를 보낸 일도 있었는데 그날 함께 낭송한 시도 있습니다.

그대의 마음과 내 마음

그대의 마음과 내 마음
꽃이 피어 있는 두 개의 목장
무지개로 얽매어 살아가노라.

그대의 마음과 내 마음
잠자고 있는 두 어린이
하늘의 은하수로 얽매어 있다.

그대의 마음과 내 마음
영원한 자의 다정한 눈길
서로 맺어진 두 마음

 우리가 펜팔을 시작한지 2년 반 만에, 스물두 살 청년과 스물한 살 처녀가 되어 3박 4일간 만났지만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헤어졌다면 누구 믿어줄지. 아무튼 그렇게 건전한 만남을 하고 다음해 4월 9일에 군에 입대를 했지요. 35개월간 군대를 마치고 1973년 3월 8일 제대를 하고 4월 10일 혼례식을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펜팔을 시작한지 만 6년이 지난 때 혼인을 해서 만 35년간 살았으니 아내와 인연을 맺은 것은 41년이 된 셈입니다.
 혼인을 하고 내 고향에서 2년 반 함께 농촌을 위해서 일하다가 1975년 10월에 부산으로 가서 온갖 고생과 여러 가지 일을 하다가, 32년간의 부산 생활을 마치고 작년 6월 1일 이곳 종남산 중턱에 땅을 사서 집을 짓고 귀촌한 것입니다. 얼마 전에 만개한 진달래를 보면서 신행길의 고속도로 주변 산의 진달래를 감격스럽게 바라보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경부고속도로 금강 휴게소에서 우후청산과 아름다운 꽃을 보고 호남고속도로로 접어들었는데, 논산 익산쪽으로 오면서 아름다운 진달래의 향연을 마치 우리 둘의 결혼을 축하하는 장식처럼 느꼈었습니다.

 우리는 첫날밤에 싸우지 말고 잘 살자고 약속한대로 35년 동안 단 한번도 큰소리로 다퉈 본일 없이 원만하게 살아왔으니 천생연분(天生緣分-하늘이 낸 부부인연, 千生緣分-전생에 천 번이나 함께 했던 부부인연)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전라북도 임실의 한 산골 청년과 경상남도 김해 평야의 처녀가 글로 만나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혼인해서 35년간 잘 살았다고 자부합니다. 우리는 혼인을 반대하는 어른들을 설득해야 했고, 맨 손으로 시작한 부산살이의 어려움도 이겨냈습니다. 인생 후반전을 이겨 보겠다는 나와 그 후반전에 도움이 되겠다던 아내의 뜻을 이룬 것입니다. 이제 조용히 그러나 의미 있게 살아 보려고 작년 여름에 부산생활 32년을 과감하게 접고 종남산 중턱 산동네로 귀촌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지금 참으로 행복합니다.
 천생연분으로 만나서 하는 일 마다 다 잘 되었고, 열심히 살아가는 남매와 착한 며느리까지 다섯 식구가 기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복하고 성공하려면 인생의 배우자를 잘 만나고 함께 노력한다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부로 만나서 35년간 함께 살아오면서 가정을 이루고 사회에 봉사하며 얻은 생각입니다. 가난하지만 온 가족이 함께 노력하여 잘 살아가는 가정이 있는가 하면, 돈도 많고 공부도 많이 하였지만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후반전에 썼었는데, 사실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가난했고 어려움도 많았지만 아내와 함께 슬기롭게 극복하였고 지금은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내가 첫 편지에서 보내 준 러시아의 대문호 푸시킨의 삶이라는 시입니다. 이 시를 받은 지 41년이 지났습니다. 우리 부부에게도 맞는 것 같습니다.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서러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찾아오리니
마음은 항상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언제나 괴로운 것.

그러나 이 모든 괴로움은
일순간에 지나가 버린다.
지나간 모든 것은 다시 그리워진다.

 1967년 3월 16일 밤에 열아홉 살 처녀가 쓴 첫 편지로 인연을 맺어, 1973년 4월 10일 오후 아내의 친정 마당에서 전통 혼례식을 치르고 부부가 된지 35년이 되었습니다.
 조금 전에 아내의 첫 편지를 읽어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어떻게 그런 편지를 쓸 용기를 냈을까? 전라도 임실 땅으로 시집가서 산촌의 농사지을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장장 6년 동안이나 편지로 어떻게 인연을 이어왔을까? 우리는 6년 동안 단 네 번밖에 만나지 못했습니다. 펜팔 2년 반 만에 마산에서 한번, 군대에서 휴가 때 아내의 집에서 한번, 제대 한두 달 앞두고 한번, 그리고 혼례식 날짜 잡고 한번, 이러니 연애다운 연애를 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서로 사랑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서로 믿고 의지하고 노력하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부부는 그렇게 살아 왔습니다. 35년 동안.

오늘은 우리 결혼 35주년 기념일 입니다.

2008. 4. 10.
댓글목록

프란치스코님의 댓글

프란치스코 작성일

  이글을 읽고 나니 한폭의 그림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참 좋아 보입니다...저도 환갑을 지나면 이렇게 글을 쓸수 있는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결혼 35주년 기념일을 진심으로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조점동님의 댓글

조점동 작성일

  프란치스코 형제님!
반갑습니다. 좋은 글도 고맙고, 관심도.... 도망도 못 다니겠네요.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와서..... 좋은 글을 남겨 주시고.
언제 한번 만나요? 대학 때 흥사단 아카데미 활도을 하셨는지요? 나는 1973년 가을에 전주에서 안병욱 교수님과 문답을 거쳐 입단하고 오늘까지 활동해 왔습니다.
프란치스코 형제! 아무튼 반갑습니다. 어쩌다 보니 환갑이지났고, 여기까지 왔네요. 형제님은 더 여유있게 사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노력해 보세요. 반드시 될 것입니다.
그럼 다음에 만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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