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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26. 나무들은 죽은 듯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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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조점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2.♡.95.11) 작성일11-01-05 14:28 조회4,5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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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은 죽은 듯 살아있다

 산촌에 땅을 구입하여 집을 짓고 들어 온 때는, 산천이 짙은 푸름으로 생명력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습니다.
6월 1일.
 눈을 들어 바라보면 꽃과 나무, 녹색으로 찬란한 울창한 숲이 보였습니다. 산새들이 노래의 향연을 베풀고, 아침에 길을 따라 산으로 오르면 노루를 심심찮게 만나기도 하였습니다. 아침 일찍 등산길에 올랐다가 노루 부부의 다정한 산책길과 마주쳤습니다. 발걸음을 멈추고 서서보고 있는데, 이내 눈치를 채고는 달아나 버렸습니다.

 산촌으로 잘 들어 왔다고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하던 그해 가을, 난데없이 우리 집 주변의 집터 공사를 한다고 난장판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날마다 굴삭기가 와서 굉음을 내면서 작업을 하고, 흙을 실어 나르는 장비가 집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흙먼지를 일으켰습니다.

 이때 딱 한 가지를 결심하였습니다. 5년 내로 우리 집을 숲속 집으로 만들고 말리라. 집터를 다듬는 공사 기간이 생지옥 같았거든요.

 다음해, 그러니까 2008년 봄에 나무를 심기 시작하였습니다. 수수꽃다리, 합환목이라는 자귀나무, 소나무, 모과나무, 진달래, 산 벚나무를 캐다가 심었습니다. 대부분의 나무는 얻어다가 심었고, 과일나무나 구하기 어려운 나무는 묘목을 사다가 심었습니다. 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는 덤으로 캐다가 심기도 하였고요.

 참으로 신기한 것은, 나무는 심어만 놓으면 어김없이 잘 자란다는 사실입니다. 자라는 것이 눈에 띌 만큼 속성수가 있는가 하면, 아무리 물을 주고 거름을 넣어 주어도 자라는 것이 더딘 나무도 있습니다. 자귀나무나 모과나무, 홍도화나무는 심어놓고 얼마간 지나서 보면 그 자라는 속도를 느낄 정도로 잘 자랍니다.

반면, 만리향이나 소나무는 그 자람이 매우 느립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산에 갔다가 작은 소나무가 가냘프게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잡아 당겼더니 쉽게 뽑혔습니다. 손가락 정도로 가늘지만 늙어 보이는 이 소나무를 화단에 심었더니 운이 좋았던지 죽지 않고 살았습니다. 나무를 심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소나무 살리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그런데, 척박한 땅에서 연명하듯 서 있다가 내 손에 잡혀 따라 온 이 소나무가 용케도 죽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이는 잘 모르지만 제법 먹었지 싶습니다. 만 3년째 된 지금 그 소나무도 몸줄기가 제법 굵어지고 솔잎도 새로 돋아났습니다.

 2008년 봄부터 2009년 봄까지 이런저런 나무들을 열심히 심어 놓았더니 우리 집 주변을 나무들이 감싸 안은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제 자라기만 하면 숲속 집이 될 것입니다.

 산촌으로 귀촌해서 나무를 심고 가꾸고 지켜보면서 나무들도 삶의 원칙이 있고, 줄기찬 생명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웃 집 밭에 있는 자귀나무를 얻어다가 심었습니다. 모양도 좋고 심어 놓은 위치도 좋아서 여름이면 좋은 나무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사랑나무라고도 일컫는 자귀나무는 두 줄 잎으로 있다가 밤만 되면 두 줄 잎이 마치 포옹이라도 하는 듯 붙어버립니다.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원위치로 돌아옵니다. 부부의 금슬이 좋게 한다고 사랑나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참으로 신기하지요.

 자귀나무는 나뭇가지가 약해서 잘 부러집니다. 기운차게 쭉쭉 뻗어 나가는 원줄기를, 실수로 그만 부러뜨리고 말았습니다. 모양이 영 이상해져서 속이 상했습니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지금은 언제 내가 부러진 가지냐는 듯 새로운 주 줄기를 내세워 뻗어 나가고 있습니다.

 2009년 여름에 어렵게 층층나무를 한 그루 캐다가 심었습니다. 나무 그늘이 참 좋은 나무지요. 산에서 캐 온 나무가, 반원 모양으로 가지가 뻗고 주 줄기는 아예 없어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가까이에 살고 있는 사촌동서가 오더니 반원모양의 나뭇가지의 양 가의 가지를, 뒤로 돌려서 고정을 시켜 주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지 하나는 약간 부러졌지만 그대로 두었습니다. 우산을 펴서 거꾸로 세워 둔 모양이 억지로 만들어 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 층층나무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아십니까?

 가지하나 부러진 것은 스스로 치유하여 튼튼하게 나았고, 우산을 활짝 편 모양의 보기 좋은 나무로 틀을 잡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뒤로 꺾어 고정시켰던 가지에서 주 줄기가 하나 나와서 하늘로 향해서 곧게  자란 것입니다. 작은 줄기에서 주 줄기가 생성한 것이지요. 마치 오합지졸 병사들 중에서 장수 하나를 새로 세워서 틀을 잡은 군대 같습니다. 이 신비로운 나무의 변화를 혼자 보기가 아깝습니다.

 나무도 제가 살 짓을 하면서 날마다 열심히 자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층층나무를 보면서 나뭇가지 하나라도 함부로 베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어떻게 곁가지에서 주 줄기를 세우고, 굳세게 하늘로 올려 보낼 생각을 하였을까요? 나무는 죽은 듯 서 있지만 하늘을 향해서 굳센 기상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침마다 난방을 위해서 나무를 때면서 산책을 합니다. 산촌에서만 볼 수 있는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아침을 노래하는 산새들의 합창을 들으면서 잎이 다 진 나무들을 살펴봅니다.

 몇 나무는 이미 봄을 준비하고 찬란한 꿈틀거림을 시작하였습니다. 목련이 두 겹 솜이불 속에 해맑은 꽃빛을 숨기고 있습니다. 참 신통하지요. 진달래도 이미 꽃봉오리를 만들어 놓고 새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른 나무들은 죽은 듯 겨울잠을 자는 듯싶은데, 목련과 진달래는 저리도 마음이 급한지요?

 새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생강나무는 더 합니다. 샛노란 씨알을 머금고 봉오리 봉오리 꽃집을 지어 놓았습니다. 참 그놈들 대단합니다. 거의 모든 나무들이'죽었소'하고 숨죽이고 있는 판국에, 저만치 앞으로 달려 나가고 있는 거지요.

 나무들은 죽은 듯 살아있고, 새봄을 기다리면서 왕성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홈페이지 happy.or.kr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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