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9월 1일에 무슨 일이? > 산촌 일기

1964년 9월 1일에 무슨 일이?

 오늘이 9월 1일입니다. 금년도 이제 넉 달, 120여일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날이 참 빠르게 지나갑니다. 오래 전에 어른들이 말씀하시기를 나이대로 세월이 간다더니 그 말이 딱 맞습니다. 10대 때는 10킬로미터, 20대 때는 20킬로미터, 50대는 시속 50킬로미터로 세월이 간다는 것입니다. 엊그제 새해를 맞이했다고 들떠 있었던 것 같은데, 벌써 9월 1일이된 것입니다.

 나는 9월 1일이면 잊을 수 없는 일이 생각납니다. 그러니까 1964년 9월 1일, 이날 내 고향 광석마을에 4-H구락부를 창립하고 동네를 위해서 일하기 시작한 날입니다. 그 전해에 전주에 있는 전기통신학원에 다녔는데, 기술도 보잘 것이 없었고 취직도 할 수가 없어서 그 해에 분가를 하고 이발소를 차린 작은 형님 댁에 가서 심부름도하고 머리도 감아주는 일을 하였습니다. 이발소 머리감는 소년이었지요. 그런데 그 마을에 몇 년 선배인 박창연이라는 형이 있었는데, 그 형도 나처럼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농사일을 하였습니다. 박창연 형은 4-H구락부 회장으로 청소년 조직을 이끌면서 농사짓는 것을 배우고 보급하면서 동네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박창연 형을 만난 것은 도산 안창호 선생께서 필대은을 만난 것과 같은 만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무를 하러 함께 다니고 저녁이면 만나서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청소년들이 4-H구락부 활동을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우리 고향 동네에도 만들어서 활동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였지요. 해가 바뀌고 1964년이 되자 집으로 와서 농사일을 하게 되었는데, 형님네 동네에서 본 4-H구락부를 만들기 위해서 내 또래 친구들을 규합하였지요. 그리고 동네 사랑방에 모여서 창립총회를 하고 열 일곱 살 밖에 되지 않은 내가 회장에 당선되고 활동에 들어갔는데 바로 9월 1일 임실장날이었던 것입니다.
 맨 먼저 시작한 활동이 독서회 활동이고 마을문고 설치였습니다. 1964년, 이 때만 해도 우리 동네에 중학교에 진학한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고 초등학교도 중퇴자가 수두룩했었습니다. 그러니 나처럼 초등학교를 제대로 졸업한 사람, 4-H구락부를 만들자고 처음 도입해 온 사람이 나이는 어려도 회장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처음 시작한 사업이 마을문고고 독서운동이었으며, 나중에는 마을회관을 건립하기로 결정하고 기금을 만들기 위해서 공동작업으로 벼베기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다음해에는 5월 8일 우여곡절을 거쳐서 완공한 마을회관 준공식을 모정 앞에서 개최하고 야학활동을 하게 되었었지요.
 1964년 9월 1일, 이날 4-H구락부를 만들고 마을문고를 설치해서 독서운동을 시작한 게 내 인생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전기를 읽고 내 인생의 방향이 세워졌고 훌륭하고 좋은 인물들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후에 농촌운동, 독서운동, 새마을지도자, 이장을 거쳐 지역사회운동가의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바로 오늘이 2007년 9월 1일입니다. 1964년으로부터 43년이 지났고 내 나이도 60살이 되었으니 무수히 많은 날들이 지나갔습니다. 43년이라는 긴긴 세월을 보내고 보니 1964년 9월 1일에 4-H구락부를 창립하고 회장으로 선출되어 농촌운동을 시작한 것이 내 인생의 한 전환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앞날에 대한 비전이나 희망도 없이 농사일을 하던 열일곱 살 소년이 농촌운동을시작한 것도, 도산 안창호라는 책을 읽으면서 정신적 지주가 된 안창호 선생의 사상과 애국심, 생활 철학을 알게 된 것도, 지나고 보니 내 인생의 큰 행운이었습니다. 사람에게는 잊을 수 없는 날이 몇 개씩은 있기 마련인데, 나는 1964년 9월 1일을 잊을 수가 없고 매년 9월 1일이 되면 아득해진 옛날을 생각하면서 감회에 젖습니다. 1964년 9월 1일! 이날은 내 인생에서 중요한 날입니다. 금년에도 벌써 9월 1일이 되었습니다.

2007. 9. 1.